배움에 대해 멀린이 한말을 기억하라.
윈스턴 처칠은 완벽주의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귀를 남겼다. 이글은 성공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가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기를 못 펴게 하는 일인지 지적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라"라는 완벽주의적인 말은 우리를 잔뜩 움츠러들게 한다. 물론 살아가면서 진정 최선을 다하고 싶어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는 어떤 중요한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최선을 다해야 한다거나 심지어는 잘해야 한다는 것조차 실행에 걸림돌리 될 수 있다. 일단 해보면 즐거울지 모르는 일을 완벽주의 때문에 기피하면서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지 말라. "최선을 다하라"를 그냥 "하라"로 바꿔보자.
완벽주의는 다시 말해 발이 묶인 상태다. 자신에게 완벽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앞으로는 도무지 어떤 것도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은 인간에게 적용하는 개념이 아니기에 그걸 기준으로 하면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진다. 신은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그런 얼통당토 않는 기준을 자신이나 자신의 행동에 적용할 필요가 없다.
멀린은 헐떡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슬픔의 가장 좋은 처방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결코 어긋날 일이 없는 거은 오로지 배움뿐이다.
사람은 노쇠해져 쭈글쭈글해진 채 사지가 후들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사악한 미치광이들의 손에 피폐해져가는 것을 지켜보고 자신의 멍예가 버러지 같은 얄팍한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 할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배움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지를 배워라. 오로지 배움만이 정신력을 지치지 않게 하고 소외시키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두렵게 하거나 불신하거나 꿈에서도 후회하지 않게 한다. 배움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자,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배움에 이세상 유일의 순수함이 있다.
일생에 거쳐 천문학을, 삼생에 걸쳐 자연사를 육생에 걸쳐 문학을 배울 수도 있다. 그렇게 백만생을 바쳐 생물학, 의학, 이론 비평학, 지리, 역사, 경제학을 배운 뒤 적합한 목재로 마차의 바퀴를 제작할 수도 있고 50년을 더 쏟아 펜싱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 뒤 다시 한 번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가 농사 짓는 법을 배울 시기를 맞이해도 좋지 않겠는가."
윈스턴 처칠은 완벽주의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귀를 남겼다. 이글은 성공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가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기를 못 펴게 하는 일인지 지적하고 있다.
"완벽이 아니면 모두 소용없다.' 라는 격언을 한단어로 줄이면 '무기력'이다.
"최선을 다하라"라는 완벽주의적인 말은 우리를 잔뜩 움츠러들게 한다. 물론 살아가면서 진정 최선을 다하고 싶어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는 어떤 중요한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최선을 다해야 한다거나 심지어는 잘해야 한다는 것조차 실행에 걸림돌리 될 수 있다. 일단 해보면 즐거울지 모르는 일을 완벽주의 때문에 기피하면서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지 말라. "최선을 다하라"를 그냥 "하라"로 바꿔보자.
완벽주의는 다시 말해 발이 묶인 상태다. 자신에게 완벽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앞으로는 도무지 어떤 것도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은 인간에게 적용하는 개념이 아니기에 그걸 기준으로 하면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진다. 신은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그런 얼통당토 않는 기준을 자신이나 자신의 행동에 적용할 필요가 없다.